나쁜 사마리아인들 - 10점
장하준 지음, 이순희 옮김/부키

“(한국전쟁 휴전 8년 후인) 1961년, 한국이 40년 후에는 세계 최대의 휴대폰 수출국이 될 거라는 말을 들었다면, 당신은 과연 어떠한 반응을 보였겠는가?”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이렇게 본론을 시작한다. 가나의 당시 연간국민소득인 179달러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82달러를 벌어들이는 나라가 40년 뒤 세계 최대의 휴대폰 수출국이 되고, 세계 반도체 시장과 조선 시장의 패권을 쥐고 있는 나라가 되리라고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과연 어떠한 과정을 거쳤기에 이렇게 ‘눈부신’ 발전을 할 수 있었을까? 만약 우리나라와 경제적으로 비슷한 상황 아래에 놓인 개발도상국들이 선진국들과 FTA(자유무역협정 : Free Trade Association)를 체결하고 세계화에 동참하여 ‘공정한’ 무역을 한다면 우리나라와 비슷한 시기, 혹은 우리나라보다 더 짧은 시일 내에 더욱 눈부신 경제 발전을 이룩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이 책은 묻고 또 답을 내린다. 미리 답을 말한다면, 답은 ‘아니요’다. 물론 한 학자의 의견이기에 정확한 것이라고 장담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읽어보았던 이와 반대되는 입장의 글들보다 훨씬 설득력이 있었으며, 훨씬 정확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경제적인 면에서- 몰랐던 사실을 알아간다는 지적 흥분감과 희열을 맛볼 수 있었다.

 

이 책은 자유무역(협정)과 자본주의의 불공정성에 관해 다루고 있다. 자유무역협정이란, 이 협정을 체결한 나라끼리 부과하고 있는 관세를 철폐하여 똑같은 입장에서-책의 표현을 빌리자면, 평평한 경기장에서-무역을 하는 것을 말한다. 현재 우리나라도 이 자유무역협정의 체결과 관련하여 크고 작은 논란이 있으며, 몇 나라와 일부 업종에 한해 협정을 맺고 있는 형편이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 등장하는 ‘자유’의 개념에 대해 의문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 초등학생과 성인이 태권도를 한다면, 자유롭고 공정한 경기가 될 수 있을까? 마찬가지로, 개발도상국과 선진국이 관세나 다른 조건 없이 무역을 하는 것이 과연 공정한 일일까? 게다가 오늘날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칭하는 많은 나라들은 전부 보호 무역으로 성장했다. 책에 나와 있는 한 예를 들어본다면,

한 방직회사가 업종을 바꾸어 자동차 생산에 들어간 지 25년이 지났다. 그러나 여전히 복제품을 만들 정도의 기술 수준밖에 되지 않고, 그나마 만들어서 수출한 것도 실패하고 말았다. 그리고 10년 전쯤에는 정부가 공적 자금을 들여 부도 위기에서 구해낸 적이 있었다. 지금이라도 20년 전에 몰아낸 외국 자동차의 수입을 자유화하고, 외국 자동차 회사들이 다시 사업을 시작할 수 있게 해야 할까? 과연 이 질문을 받은 사람들은 어떻게 대답할까?

이 회사가 일본의 자동차 회사 ‘도요타’이다. 당시 자동차 수출에 실패한 회사에게 자동차 생산을 금지시키고 외국 자동차의 수입을 허용했다면, 도요타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거나 외국 자동차를 수입해서 파는 파트너 회사밖에는 되지 못했을 것이다. 일본 정부의 강력한 (기초 산업을 키우겠다는) 의지가 없었다면 일본은 오늘날과 같이 발전하지 않았을 것이다. 바로 이 도요타를 키워낸 바탕이 보호무역제도이다. 정부의 강력한 의지로 자국의 산업이 충분히 경쟁할 준비가 되기 전까지 ‘기울어진 경기장’에서 경기를 치르도록 했던 것이다. 유럽도 다르지 않다. 1820년의 영국은 수입 공산품에 대한 평균 관세율은 45~55%에 달했다. 게다가 자국의 농업이 충분히 발전하기 전까지 값싼 곡물의 수입을 전면 금지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이러한 수입 금지 조치를 해제함과 동시에 활짝 개방하여 경쟁국들을 ‘농업’으로 유인하려 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뜨거운 감자인 ‘한․미 FTA’의 두 번째 주연인 미국도 예외는 아니다. 1812년 미영전쟁이 발발하자 미국 의회는 외국 공산품의 평균 관세를 25%로 올렸고, 전쟁이 끝나고 나서 관세율은 평균 40%까지 치솟았다. 1860년대 링컨도 남북전쟁을 치른다는 명분으로 44%까지 올리기도 하였다. 자유무역을 외치는 나라들의 과거에는 이렇듯 늘 보호무역기간이 있어 왔다. 사실 따지고 본다면 이는 당연한 이야기이다. 자동차 제조업이나 철강, 항공 산업 등 중공업은 오랜 기간이 지나야 성과가 나올뿐더러, 지속적인 투자가 없다면 국제 사회에서 금방 도태되고 만다. 물론 이미 경쟁력을 확보한 산업에 대해 계속 보호무역으로 일관한다면, 그 산업은 나태해지고 결과적으로 도태하게 된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정부가 나서서라도, 다른 부분의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해당 산업을 장기적으로 발전시켜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이다.

“새로운 기술을 흡수하려면 시간과 경험이 필요하다. … 여기에는 희생이 따른다. 보다 우수하고 보다 저렴한 상품을 수입할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해야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 발전시키길 원한다면 마땅히 치러야 할 대가이다.”

아울러 고부가가치 분야인 지적소유권 강화에 대해서도 비판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심각하게 문제가 되고 있는 각종 프로그램이나 창작물의 복제를 규제하는 것이 이에 해당되는데, 특히 특허와 관련 된다. 선진국들이 전체 특허의 97%를, 그리고 저작권과 상표권의 대다수를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적소유권 보유자들의 권리가 강화되면, 개발도상국들의 지식 획득 비용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결국 선진국의 원조로 받은 차관이나 그럴 듯한 무역 혜택에서 얻은 얼마 되지 않는 이윤을 다시 기술을 수입하는 데에 쏟아 부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지적소유권을 무시하고 폐지하라는 주장은 아니다. 다만 나라의 상황에 맞게 융통성을 발휘할 수는 있다고 보는 것이 이 책의 견해인 것이다.

 

너무나도 빠르고 넓게 이 세상은 변화하고 있다. 오늘의 승자가 내일의 패자가 되는 무한 경쟁 체제에서 각 나라와 각 회사는 내일도 웃기 위해 무던히 애를 쓰고 있다.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들은(99만 원 가진 사람이 1만 원 가진 사람의 돈을 빼앗아 100만 원을 채우려 하듯) 개발도상국들의 발전 기회마저 허울 좋게 ‘자유’무역이라는 이름 아래 짓밟아 버리고 자국의 이익을 취하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 이를 위해 선진국들은 개발도상국들에게 ‘평평한 경기장’에서 경기를 치를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각국의 역사와 발전 정도를 따져 본다면 ‘기울어진 경기장’이 오히려 정말 공평한 경기장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직 제대로 된 투자와 개발을 하지 못했을 뿐인, ‘어린아이’와 같은 상태인 것이다. 능력과 시간이 충분하다면, 오늘날의 ‘가난한 나라’가 40년 뒤, 우리나라보다 더 발전하지 말라는 법도 없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는 지구촌 사회이다.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강타하였듯, 한 곳의 사건사고는 다른 곳에 필연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한 마을’이 된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한 사람의 열 걸음 전진은 의미가 없다. 오히려 열 사람의 한 걸음 전진을 위하여 서로 노력하는 것이 화합하여 발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일 것이다.

‘너’와 ‘내’가 지금 당장 똑같은 조건에서 똑같이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충분히 성장할 때까지 시간을 두며, 그리하여 서로가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여 발전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이것이 진정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자유 무역’의 의미가 아닐까?

 

“여섯 살짜리 아이를 생업전선에 내보낸다면, 구두를 닦든 어떻게 하든 먹고 살 수는 있을 것이지만 결코 뇌수술전문의나 핵물리학자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직업을 가지려면 10년이고 20년이고 지속적인 투자와 보호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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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xinterris 2010. 9. 2.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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